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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aluk's Report

- 2012 New Year's eve in Budapest

낮에 은행 볼 일 때문에 옥토곤에 나가 보니 평소와 분위기가 좀 달랐다. 거리 곳곳에 파티용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고 엄마 아빠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들 입에 물린 형형색색의 길쭉한 나팔이 부~부~ 연신 울려 대고 있었다. 그렇다. 우리로 치면 제야행사가 벌어지는 날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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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돌아와서 구글을 돌려 보니 부다페스트에서 제야의 행사는 뉘거티, 옥토곤, 뵈로쉬머르티에서 열린다는 정보. 그래, 유럽의 신년맞이 행사 구경 한번 나가보자. 아무 생각 없이 널부러져 있는 sam과 johnny를 부추겨 세 식구가 꽁꽁 싸매고 밤 11시쯤 집을 나섰다. 어디선가 계속 폭죽 터지는 소리는 들리는데 불꽃놀이는 보이질 않는다. 차는 머르깃 역 부근에 주차해 두고 트램을 타고 머르깃 다리를 건너 뉘거티에 도착하니 친구끼리 가족끼리 손잡고 나온 사람들이 더러 눈에 띄지만 대체로 한산한 분위기. 젊은이들은 손마다 술병이 들려 있다. 그래도 고주망태 취해 객기를 부리거나 고성방가 부르는 사람은 없다. 건널목에서 한 젊은 사람이 맥주잔을 sam에게 내밀며 뭐라 뭐라 하길래 나도 그랬지만 sam도 새해인사 하나 보다 하고 "Happy New Year~!!" 생기발랄하게 외치는데, 그 청년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맥주잔을 내밀며 뭐라 뭐라 지껄인다. 마시란 얘긴가? 어정쩡하게 맥주잔을 받아 들자 그 청년 자기 점퍼 자크를 채우더니 고맙다며 맥주잔을 다시 가지고 길을 건너 사라진다. 우리 모두 잠시 어안이 벙벙. 

옥토곤 트램역에서 마주친 골초 토끼와 그의 친구들


옥토곤으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옥토곤은 뉘거티보다 좀더 붐비는 분위기. 파티용품을 파는 노점과 나팔을 불어대는 아이들을 목등 태우고 인파 속을 누비는 가족들, 하얀 입김을 뿜으며 담소를 나누는 젊은이들로 옥토곤 사거리가 복닥거린다. 그래도 보신각 타종행사에 모여드는 서울 시민의 1/10도 안되는 인원. 게다가 아무리 둘러 봐도 카운트다운을 볼 수 있는 전광판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무대는 눈에 띄질 않는다. 뵈로쉬머티로 갈걸 그랬나? 더 움직이면 12시 카운트 다운을 놓칠 것 같아 옥토곤에서 새해를 맞기로 했으나 아직 30분 가량 남은 시각. 잠깐이라도 추위를 피하자고 옥토곤 근처 맥도널드에 들어가 따뜻한 음료로 언 손을 녹이며 시간을 보냈다. 5분 정도를 남겨 놓고 다시 거리로 나와 보니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거리 길 모퉁이에 모여들고 있다. 여전히 카운트 다운을 볼 수 있는 전광판은 어디에도 보이질 않고 옥토곤 사거리 사람들의 머리수만 점점 늘어난다. 잠시후 여기 저기서 카운트 다운을 셀프로 외치는 소리가 몇초 간격으로 터져 나온다. "Harom, Ket, Egy, Nulla !!" 전광판이 없으니 모두들 자기 시계 보고 카운트다운을 한 것. 일체감은 없었지만 저마다 흥에 겨워 술병을 부딪치고 안아주고 키스하고 폭죽을 터뜨리고 각자의 파티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다. 우리 가족도 서로 어색하게 등 한번 쓸어주며서 Happy New Year 한 마디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너무 추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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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가운 밤 공기에 두 볼이 발갛게 상기된 앳되어 보이는 한 소년이 낯선 이방인 가족에게 Boldog új évet~!! 라고 외친다. 그네들의 Happy New Year 란 표현. 너도 '볼독 우이 이에베뜨다, 아가야!'  화려한 불꽃 놀이도 군중의 집단 카운트 다운도, 높은 빌딩에서 흩날리는 종이눈도, 흥에 겨운 음악과 춤도 없던 조촐한 부다페스트의 제야행사에서 얻은 교훈, 연말연시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