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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aluk's Report

- 부다페스트 크리스마스마켓 방문기


Andrássy út #3 - Krisztian Bodis Photography


 # Intro 

해마다 12월이면 유럽 주요 도시엔 크리스마스 장이 선다. 부다페스트도 예외는 아니어서 11월 말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뵈뢰쉬머르티 광장(vörösmarty tér)에 크리스마스 장이 열린다. 샘 사무실에서 지하철로 5 정거장. 엎어지면 코 닿을데 있는 곳이라 마음 먹으면 매일이라도 갈 수 있는 곳이건만 무에 그리 바쁘다고 미루고 미루다가 며칠 전 겨우 짬을 낼 수 있었다.


 # 크리스마스로 가는 오래된 지하철 

뵈뢰쉬머르티로 가려면 지하철 1호선을 타야 한다. 여기서 잠깐 지하철 얘기 좀 하고 넘어가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지하철을 만든 나라는? 딩동댕 영국이다. 조선반도에 전기가 들어 오기 30여년 전인 1863의 일이다. 그럼 세계에서 두번째로 지하철을 건설한 나라는? 놀랍게도 헝가리다. 헝가리는 1896년 건국 1000주년을 기념하여 땅 밑으로 전차가 다니는 길을 만든다. 늘어나는 교통량으로부터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들어 찬 언드라쉬 거리를 보호하려는 의도도 있었다고 하니, 이들의 전통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지극하다. 다른 노선과 달리 1호선 지하 깊이가 유독 얕은 까닭도 이렇게 오래된 역사에 기인한다. 열댓개 남짓되는 계단을 내려가면 곧바로 플랫폼이다. 지하철 차량은 몹시 낡았지만 역사 안 조명이나 매표소, 타일로 장식한 벽면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은 오히려 클래식하고 따뜻하다. 부다페스트 지하철 얘기는 다른 꼭지에서 한번 다룰테니 이쯤에서 접고, 맛뵈기로 1호선 동영상 감상해보시길.


이렇게 고풍스럽지만 낡은 지하철을 타고 1호선 기점인 뵈뢰쉬머르티역으로 향했다. 탈 때는 좌석이 군데 군데 비어 있을 만큼 한산하더니 1,2,3호선이 모두 교차하는 데악 역에 이르자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올라 탄다. 헝가리인들은 워낙 조용한 사람들이라 평소 대중교통 안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명절을 앞둬서 그런가, 젊은이들이라 그런가 오늘 이들은 꽤나 시끄럽다. 그런데 가만 귀기울여 들어 보니 헝가리말이 아니라 영어다. 그럼 그렇지.. (부다페스트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수다 떠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열 중 아홉은 미국인이라는데 500원 건다) 마지막 역임을 알리는 안내방송과 함께 지하철이 멈춰 서고 낡은 철문이 철커덕 열리는 순간, 쏟아져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부드러운 와인 향기와 구수한 빵굽는 냄새가 가늘게 흘러 들어온다. 크리스마스마켓이다. 눈보다 코가 먼저 도착했다.  

 # 뵈뢰쉬머르티 광장의 크리스마스마켓 

열개 남짓 되는 계단을 올라 광장에 들어선 순간, 와인향기와 온갖 음식 냄새가 짙어 지면서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크리스마스 전구로 장식한 나무들, 4열 종대로 광장을 빼곡히 매운 노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만치 설치된 간이 무대에선 흥겨운 헝가리 민요 가락이 흘러나온다. 노래 소리에 이끌려 무대 쪽으로 다가섰다. 헝가리 전통악기를 반주로 열심히 노래하고 있는 자그마한 몸집의 여가수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몽게몽게 피어 오르고, 간이 무대를 둘러 싼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핫와인, 푼치(헝가리 전통주, 뻘린꺼를 뜨겁게 덥힌 술)가 담긴 컵을 하나씩 들고 흥에 겨운 듯 들썩인다. 


크리스마스마켓에서 파는 대부분의 상품들은 헝가리쿰(Hungaricum)으로 크리스마스 소품들, 트리 장식, 과자와 사탕, 수공예품들이 매대마다 형형색색 진열되어 있다. 헝가리쿰이란 헝가리에서 나는 산물로 헝가리인들이 만든 전통 음식, 전통 수공예품 등을 일컫는데, 이런 헝가리쿰에는 부가가치세가 붙지 않는다고 한다. 헝가리산 와인이나 맥주가 싼 이유도 그 때문이다. (최근 EU가 헝가리산 주류의 자국 판매시 수입 주류와 마찬가지로 주류세를 붙여야 한다고 압력을 넣어 헝가리 국민은 물론 정부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헝가리에서만 볼 수 있는 올망졸망한 크리스마스 장식들,  전통 문양을 꼼꼼하게 새겨 넣은 공예품, 다채로운 향초와 향신료, 달콤한 과자와 형형색색의 쵸콜릿 더미, 손으로 일일이 장정한 다이어리와 달력들... 이방인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비하게 아름답고 반짝거릴 뿐, 거친 마무리나 다소 비싼 가격표는 내년에나 눈에 들어올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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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모이는 곳엔 언제나 먹을 거리도 따라오게 마련. 광장 한복판에는 구운 소시지, 돼지 족발, 랑고쉬(밀가루 반죽을 얇게 튀겨 그 위에 토핑을 올려 먹는 헝가리식 피자), 고춧가루를 듬뿍 넣은 구야시, 걸쭉한 야채 스튜 같은 전통 헝가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와 헝가리 각지에서 올라온 포도주, 40도가 넘는 과일 독주인 뻘린꺼를 항아리에 데워 파는 노상 카페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데운 와인 한잔이 우리돈으로 700포린트(3500원)에다 구야시 한 그릇이 2000포린트 (1만원) 정도면 일반 식당보다 두배 정도 비싼 가격이지만 노상 테이블은 쇼핑으로 허기진 관광객들로 앉을 자리 없이 북적인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스튜 냄비에서, 노릇 노릇 구워지고 있는 랑고쉬에서, 타다닥 소리를 내며 그릴 위에 누워 있는 소시지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유쾌한 수다와 흥겨운 축배로 즐거운 사람들이 내뿜는 하얀 입김이 커다란 팬과 냄비에서 모락모락 흰 연기를 피우며 익어가는 맛있는 음식 냄새와 함께 안개처럼 퍼져  광장 구석구석을 따뜻하게 덥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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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oing home 

그렇게 이국의 향기에 취해 노닥거리다 보니 벌써 7시. 혼자 집 지키고 있을 똘비 생각이 그제사 번쩍 든다. 광장을 나서기 전 떠들석한 광장 풍경을 다시 한번 둘러 본다. 어쩌면 내년엔 오늘 같은 흥분을 못느끼겠지. 낯선 풍경은 덩어리로 다가와 가슴에 자리 잡고, 익숙해진 일상은 조각으로 분할되어 정보로 머리에 기억되는 법이니까. 메리 앤 아듀 2012 크리스마스~!! 

Boldog Karácsonyt !!

Merry Christma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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