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고 이런 사단이 벌어질 줄 알았다. 개들과 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아드레날린이 최대치로 분비되는 똘비는 큰개든 작은개든 가까이 있는 개든 멀리 있는 개든, 상대 가리지 않고 죽도록 짖어대며 덤벼댄다. 심지어 제 심기가 불편하면 멀쩡히 길 가던 사람한테도 덤빈다. 그럴 때마다 목줄을 바투 잡고 막아서지만 녀석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 말 그대로 힘이 딸린다. 4킬로에 불과한 녀석이 용을 쓰며 앞으로 내닫는 것을 막으려면 젖 먹던 힘까지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아차 하는 순간 줄을 놓치고 만다. 서울에서도 몇번 줄을 놓쳐 경을 친 적이 있다. 세 식구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 다니는(캥거루 처럼 뛰니 '튀어 다니는'이란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녀석을 삼십분 넘게 쫒아 다니느라 혼이 쏙 빠진 기억이 있다.
지경이 이러한지라 산책 나설 때마다 목줄은 필수요 혹시나 풀어지지 않을까 꼼꼼하게 살피고 나간다. 그런데도 가끔 끔찍한 상상 때문에 줄을 다잡는 것이, 마침 도로 맞은 편으로 지나가는 개를 보고 짖다가 자기 분에 못이겨 있는 힘껏 내달리는 바람에 나는 줄을 놓치고 달려오는 차가 똘비를 덮치면 어쩌나 불안해진다. 생각만으로도 다리에 힘이 풀리고 벌써 목이 메어온다. 해서 똘비와 산책을 나갈 때는 손등과 손목에 몇번씩 목줄을 감아 단단히 그러쥐는 것은 기본이요 전후좌우는 물론 도로 저편까지 신경 쓰면서 될수록 다른 개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를 쓰며 걷는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상상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산책 중간에 쉬어 가자며 들른 맥도날드 앞 벤치. 커피를 마시며 SAM과 나는 수다를 떠는 통에 길 건너 산책 나온 커다란 하운드 독을 보지 못했던 것이 불찰이었다. 갑자기 똘비가 미친 듯이 짖더니 sam의 손아귀에서 줄이 스르륵 빠져 나갔고 녀석은 쏜살같이 도로를 향해, 정확히 말하면 도로 저편에서 멍 때리고 있던 하운드 독을 향해 뛰쳐 나갔다. 나는 안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저 어! 어! 어! 세 마디만 크레센도로 질러댔을 뿐이고. SAM이 헐레벌떡 뒤를 쫒아 길을 건너 간신히 녀석을 잡고 나서야 녀석이 뛰어 든 도로가 평소 같으면 시속 60킬로로 차들이 쌩쌩 달리는 4차선 도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 녀석이야 본능에 따랐을 뿐 줄을 느슨하게 잡은 사람 잘못이라며 Sam을 맵게 구박을 해도 놀란 가슴은 쉬이 진정되질 않는다.
다이내믹한 산책을 하고 골아떨어진 녀석의 작은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녀석이 뛰어든 그 위치, 그 시간에 도로 위로 차가 지나가지 않았다는 건 순전히 정권사님 기도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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