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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헝가리에서 첫 여행, Hortobágy

 

 그 :   박부장이 그러는데 호르토바지 푸스터 평원이 그렇게 좋다네? 끝없이 펼쳐지는 지평선이 압권이래.

 나 :  그래?

 그 : 세계 3대 평원 중 하나잖아. 미국의 프레일리, 아르헨티나의 팜파스, 헝가리의 푸스터.

 그 : 이번 주말에 렌트해서 가보자.

 쟈니 & 나 : 짝짝짝!!! 좋아 좋아.


그렇게 해서 헝가리 이주 후 첫 가족여행지는 부다페스트에서 2시간 가량 떨어진 호르토바지로 결정 났다.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지와 그 위를 달리는 말과 목동. 어쩌면 우리도 말을 타볼 수 있을 것이고, 목동이 친 천막 아래서 전통 '구야쉬'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Sam은 Hertz에서 차를 렌트해 이틀 간 헝가리 도로 적응 모드에 들어 갔고 떠나기 하루 전날은 고속도로 진입과 휴게소 및 톨비 이용까지 두 시간 가량 예행 연습도 했다. 나는 인터넷으로 호르트바지에 대한 대강의 정보를 훑어 보고 네비게이션 없는 여행이라 구글맵으로 상세 경로까지 지도로 출력한 상태. ( http://goo.gl/maps/rDkm ) 출발 하루 전, 모든 준비는 완료 됐다.

'자, 이제 날만 밝아라. 유럽산 자동차로 제한속도 130km 넘나들며 헝가리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주마!'

하지만 현실은... 허우대만 멀쩡한 스코다는 아무리 엑셀을 밟아대도 100 근처에서 허덕였고 아침부터 꾸물거린 하늘은 간간히 실비를 흩뿌리더니 호르트바지에 다다르면서는 장대비로 바뀌었으며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기는 하나 그 위를 달리는 건 우리의 헐떡거리는 스코다 뿐이었다. 봄비 주룩주룩 내리는 호르트바지는 곳곳이 물구덩이, 신발 빠지는 진흙밭이었고 관광객은 커녕 오가는 동네 개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며 초원으로 향하는 철문은 굳게 닫혀 있는 데다 박물관, 상점 할 것 없이 거의가 폐점 상태. 우리를 맞이 한건 전봇대 위 둥지를 지키는 두루미(처럼 보이는 큰 새) 한 쌍과 목동을 형상화한 조각상 몇 점이 전부였다. 기대가 컸던 탓인가 세계 3대 평원이라는 푸스터의 중심, 호르트바지의 후줄근한 모습에 셋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나 : 이게 다야?

그 : 글쎄.. 박부장 말로는 정말 좋았다던데.. 비가 와서 그런가?  

나 : 비가 와도 그렇지. 중부유럽 최대 평원이 볼 게 이렇게 없다니!!

그 : 헝가리 경제 어렵다더니 이런데서 드러나는군. 쳇.

나 : 아무리 경제가 어려워도 명색이 국립공원인데 이렇게 관리해서 어디 관광으로라도 먹고 살겠어?

그 : 얼른 밥이나 먹고 비 더 맞기 전에 가자


문을 연 식당 하나를 발견한 것은 불행 중 다행. 넓은 홀에 우리 가족만이 손님의 전부였으나  구야시와 생선 튀김, 스테이크는 생각보다 맛있었고 곁들여 시킨 2500원짜리 잔 포도주는 양도 질도 대만족. 배부르니 같은 풍경도 달리 보이는 법. 비내리는 초지는 운치 있어 뵈고, 아기자기한 꽃들로 앞마당을 가꾼 근처 주택가도 낭만적이다. 동양에서 온 관광객 호주머니를 어떻게든 열어 보겠다고 장대비 맞으면서 채찍(을 흉내낸 기념품 채찍)을 이리 저리 휙휙 휘두르며 소박한 목동 코스프레를 보여주신 기념품 가게 아저씨 덕에 웃을 수도 있있고...

 

다녀와서 얼마 후, 거주증 때문에 도움을 주었던 헝가리 거주 16년차 L씨에게 자랑 반 푸념 반, 헝가리 첫 여행 후일담을 들려주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 마디 한다.

"비수기에 호르트바지는 왜 가셨대요?  거긴 여름에 문 열어요. 성수기 때는 말쇼도 하고 캠핑장도 열고 사람도 많고 행사도 많고 정말 볼 만한데.."

 비.수.기.란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에 박혀 버렸다. 한 겨울에 해운대 가서 한국 최대 해수욕장이 왜 이리 썰렁하냐고 푸념한 꼴. 그날 밤, sam과 나는 예행연습까지 했던 어이없는 우리의 첫 여행을 복기하며 배꼽 빠지도록 웃다 잠들었다.

 

12.04.15  / Hortobagy / Canon

호르토바지 가는 길 http://goo.gl/maps/rD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