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m이 엄마한테 보낸 메일
첫 문장은 서간체로 시작했으나 내용은 거의 전형적인 '블로거체.
글쟁이의 말로란 이런 것. 흙 ㅠ
그러나 상봉 순간의 생생함이 잘 살아 있고,
같은 상황을 참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동의 없이) 공개키로.
각주는 편집자 임의로 달은 것임.
어머니 기도 덕분에 저희들이 살아갑니다. 감사합니다.
은정씨 오기전에 집 바닥이 '반짝반짝, 매끄매끌해 똘비가 미끄러지도록 하자'고
아빠와 아들이 의기투합했습니다.
쓸고,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먼지를 빨아낸 다음 물걸래질을 네번 했습니다.
지환이는 손걸래로 탁자와 가구 먼지를 닦았고요. 1
샤워를 마치니 비행기 도착시간이 임박했습니다.
공항까지는 30분 남짓이고, 짐 찾는데 시간이 걸릴테니
늦지 않게 얼추 맞춰댈것 같았습니다. 2
점심 때 미리 사둔 꽃다발도 챙겼는지 점검하고...
공항까지 가는 도로에서 지환이는 차창을 열었습니다.
그리고서는 냅다 "똘비야~~~ 어서오너라, 형아가 낙타구이 해줄께~~"
아빠, "낙타구이가 뭐냐?"
지환 "어..중앙아시아 위구르 족이 결혼식때 먹는 요리인데...
낙타가 크잖아. 낙타를 잡고, 그 뱃속에 돼지를 넣고, 다시 돼지 뱃속에 양을 너고....
양 뱃속엔 닭을 넣고.....그러구 나서 불가마에 푹 익힌거래."
아빠.."-_-;"
아빠 "너 혹시라도 엄마와 똘비 보거든 똘비한테 먼저 달려가면 죽을 줄 알아."
아빠 "그랬다간 엄마가 평생 그 일을 잊지 못할거야. 엄마한테 먼저 달려가구, 그 다음이 똘비야...명심하라구."
공항에 도착하고 전화로 주차비 내고...1층 입국장으로 들어서니
안내판에는 프랑크푸르트발 부다페스트착 항공기 도착 여부와 도착 시각이 없었습니다.
마중나온 사람에게 물어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지환아~~~"
은정씨는 저보다는 지환이를 먼저 찾더라구요. 3
뒤를 돌아보니, 사람은 보이질 않는데...
그순간 어디선가 은정씨가 나타났습니다.
캐리어에 짐을 잔뜩 싣고..
꽃다발을 안고, 찐하게 키스를 하려는데,
은정씨 "이게 뭐야, 꽃이 시들었잖아" 4
아빠 "ㅠ.ㅠ"
그 순간, 치와와처럼 변신한 똘비가 내 정강이에 코를 대고 한두번 킁킁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러더니 똘비는 펄쩍 뛰어오르며..
.
은정씨+똘비+형아+아빠, 해서 4중 포옹을 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보다 더 극적인 장면이 아녔을까 생각합니다.
꽃다발을 들고 환하게 웃는 은정씨는 피로한 기색도 없이 신이 났습니다. 5
똘비는 연신 아빠 품을 파고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형아가 약간 서운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은정 "어머..차 좋네..새 차 같다."
아빠 "어 새로 산 내비게이션도 참 좋아. 영국식 발음으로 설정했더니, '아프터 포 헌드레드 미터스, 킵 롸이트'...어때 듣기 편하지?"
은정 "근데 그게 무슨 뜻이지?"
아빠 "ㅠ.ㅠ, 400미터 다음에 지금처럼 우측 차선을 유지하란 뜻 같아."
형아 "똘비야, 엄마랑 함께 오느라 고생 많았다. 저게 다뉴브 강, 아니 두나 강이다"
똘비 "ㅡ,ㅡ"
공항에서 활발했던 똘비는 마취 약기운이 남은 탓인지 차 안에서 형아 품에 안겨 연신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형아 "근데, 이걸 엄마가 다 들고 왔어?"
엄마 "혜경이, 병희 이모가 도와줬어"
형아 "엄마 대단하다~~~"
집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차고에서 4층까지 이민가방을 안고 메고 계단으로 올라가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습니다. 6
엄마 "어머...새집이네...집안이 잔뜩 쌓였을 줄 알았는데, 텅 비었네.." 7
아빠 "정리한다고 정리했는데, 당신 마음에 들지 모르겠어. 당신이 찬찬히 다시 배치해야 할거야." 8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이민가방은 순식간에 산타 선물 보따리가 됐습니다.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 김치, 젓갈...
엄마 "동물농장 독파, 책걸이 축하 선물이다. 자, 아디다스 트레이닝 복"
지환 "@.@?!"
지환 "엄마, 고마워"
지환이는 활짝 웃었습니다.
제 핸드폰도 왔고, 회사에 수리를 맡겼던 노트북도 왔습니다.
한달 살아보고 그래도 이건 꼭 더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가져오니 더 귀해보입니다.
뱃짐으로 미리 부쳤던 똘비 용품 가운데
곰돌이와 개구리를 내어주니 똘비는 냄새 한번 맡더니 곧바로 물고 뱅뱅 돌아다닙니다.
형아 "똘비 잡자..."
똘비 "@.@" 후다닥...
그렇게 새벽 2시가 됐습니다.
은정씨는 시차 탓에 잠을 못 이룹니다.
은정 "지환아, 똘비 데리고 잘래?"
지환 "....아니야...엄마 아빠랑 자..잘자요."
똘비는 보문동 시절을 기억하는 지 침대 먼 발치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보문동 시절의 4분의 3을 부다페스트 집으로 옮겨온 듯 합니다.
어머니께서 오시면 부다페스트 푸스차세리 9 집은 보문동 판박이가 됩니다
어머니께서 오시면 제가 낙타구이를 해드리겠습니다. 10
- 미안해서 어쩌지.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풀다 만 짐더미였지 탁자나 가구, 바닥 청소 상태가 아니었는데.. [본문으로]
- 내 짐이 좀 일찍 나온 탓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똘비까지 다섯개의 짐을 이고 지고 나섰는데 마중 인파 가운데 아시안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고.. 결국 출국장 밖에서 15분이나 기다려야 했다고요. [본문으로]
- 쟈니 꽁지머리 뒤꼭지가 먼저 눈에 들어오기도 했거니와 내가 원래 멀리선 잘 부르지 안잖아.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본문으로]
- 글쎄, 나도 웬만하면 반색하려고 했다고요. 근데 후줄근한 행색의 대머리 아저씨가 자기보다 더 후줄근한, 할미꽃처럼 고개 푹 숙인 보라색 꽃을, 반쯤 벗겨져 너덜너덜해진 비닐로 둘둘 만 꽃다발을 들고 서 있으니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으나 뭐라고 한 마디는 해야 할 것 같아서 한다는 말이 '꽃이 왜 이래!'였던 것. 지금 생각해도 이 부분은 미안한 것이 사실. 시든 꽃이라 버리려다가 성의를 생각해 하루 이틀 화병에 꽃아 두고 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그 꽃은 낮에 피고 밤에는 시드는 전형적인 나팔꽃과. 밤비행기 탄 내 탓이 크지 뭐... [본문으로]
- 오면서 내내 걱정이 똘비 이 놈이 부자를 못 알아 보고 컹컹 짖어대면 어쩌나였는데 이놈이 아빠를 알아보고 깡총거리는 것이 어찌나 대견하고 이쁘던지.. [본문으로]
- 그 가방 말고 4개를 더 끌고 서울에서 날아 온 나도 있는데.. [본문으로]
- 숨은 뜻 : 대체 나머지 짐들은 다 어디다 처박아 둔거야? [본문으로]
- 숨은 뜻 : 푼 짐 정리도 다시 해야 할 것이고 안 푼짐도 창고에 한 가득이야. [본문으로]
- 푸스차세리가 아니라 푸스터세리라고 누차 얘기했건만.. [본문으로]
- 돼지, 양, 닭은 내가 구해볼테니 낙타는 당신이 구해. 꼭 그러기로 해. [본문으로]